국가대표 김진수, 선수협을 말하다.
작성자KPFA
- 등록일 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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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니체는 “나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고 말했다. 축구인 김진수 또한 마찬가지다. 김진수는 커리어 내내 어려운 상황에서도 스스로 용기를 냈다. 본인 또한 힘들 법도 한데 김진수는 항상 나보다 ‘다른 선수들’의 인권을 먼저 말했다. 한국프로축구선수협회(이하 선수협)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김진수는 더욱 많은 선수들이 용기를 내 ‘선수 인권’에 대해 말하자고 독려했다.
선수협의 경우 K리그가 쉴 때 주로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김진수는 국가대표팀의 부름을 받아 다른 선수들에 비해 참여가 어렵다. 그런데도 선수협이 행사를 진행할 때 자기 힘이 닿는 만큼 뒤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선수가 바로 김진수다.
“선수협이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참여하지 못해 아쉽죠. 그런 아쉬움을 달래고자 내가 할 수 있는 한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으려고 합니다.” 김진수의 말이다.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한 김진수, 한층 성장했다.
2012년 일본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한 김진수. TSG 1899 호펜하임을 거쳐 전북에서 현재 활약하며 프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는 김진수는 한국 대표팀에서도 A매치 경기를 어느덧 41경기나 소화하며 팀의 중고참이다. 막내에서 어느덧 팀의 선참 가운데 한 명이 된 김진수는 국외에서 오랜기간 프로 생활을 했기에 누구보다도 선수 인권에 관해 깨어있는 선수다.
김진수는 “어릴 때 보이지 않던 점들이 이젠 조금씩 보인다.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다 보니 태극마크의 무게, 그리고 베테랑의 역할과 책임감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분명한 건 김진수는 인터뷰 내내 후배들을 위해 선배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의 책임감이 강해진 건 아이가 생기고 나서일까. 김진수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이가 생긴 후 아내에게 한 말이 있어요. 내가 축구선수 생활을 하다 보니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경험하진 못했지만 생각해보면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경직된 느낌이 많았어요. 반면, 일본과 독일에서 6~7년을 살면서 가장 놀랐던 점이 뭔지 아세요? 그건 바로 선수들이 자기가 생각하는 바를 정확하게 주장하더라고요. 그리고 의견을 받은 감독도 인정할 점은 바로 인정하고요. 그러고 나서 변한 상황에 따라 또다시 나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요. 이걸 보면서 우리 아이는 10명 가운데 9명이 아니라고 해도 본인이 생각하는 게 맞는다는 생각이 들면 남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소신을 갖고 주장할 건 주장하도록 키우자”라고 했다.
“지금까지 이런 선수는 없었다” 김진수의 소신
지금까지 대부분의 선수는 선수협 활동에 ‘소극적’으로 임했다. 임원진을 제외하곤 앞장서서 선수 스스로가 가진 생각을 밝히긴 아무래도 부담스러웠다. 그렇기 때문에 조용히 선수협 활동을 지지하고 안정적으로 한해 한해를 마무리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하지만 김진수는 다르다. ‘있는 듯 없는 듯’한 행보가 아니라 누구보다 자신감 있게 선수들의 권리에 대해 자기 생각을 전했다. 다른 선수들과 차별화된 모습이다.
축구계에선 김진수를 가리켜 누구보다도 선수협에 맞는 선수라는 평가가 많다. 한 축구인은 “선수들의 어렵고 부당한 일을 겪을 때 누구 보다 앞장서서 선수를 도와줄 용기 있는 사내”라고 귀띔했다.
김진수는 “처음 선수협에 활동하기 위해 가입했을 때 아내가 많은 걱정을 했죠. 무언가를 하면 욕은 욕대로 먹을 텐데 굳이 왜 하려고 하냐고 물었죠. 아내 말도 맞아요. 하지만 지금이라도 무언가 바뀌지 않는다면 영원히 바뀌지 않겠죠. 조금이라도 좋게 변화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한 가지 계획한 점이 있다면 제가 받은 사랑만큼 팬에게 돌려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사회공헌활동도 많이 하고 싶고요. 다만, 늘 염려하는 아내에게 미안할 따름”이라며 뒷바라지하는 아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오늘도 김진수는 변화를 위해 3년, 10년 뒤를 내다보고 축구선수의 미래와 지켜야 할 것을 고민하고 있다.